하루키에 대해

'하루키를 좋아한다'라는 것이 그 사람을 판단하는 지표로써 작용하기도 한다는 것은 하루키에 대해 이야기를 나눠본 이들이라면 상당수가 동의하지 않을까 싶다. 심한 이들은 하루키에 대한 호오로 그 사람의 취향을 맘껏 재단할지도 모른다. 하루키를 좋아하는 사람이라고 했을 때 상상되는 특정한 이미지가 있고(딱히 좋다고 말할 순 없는), 그의 글에 대해 외설 소설이니 뭐니 왈가왈부 말을 얹는 사람들도 많지만... 하루키의 문장에 감탄해보지 않은 독자가 얼마나 될까? 결코 드물다고 생각된다. 하루키의 글에는 특히 돋보이는 부분이 있다. 바로 '감각적 부대 지식'이다. 피에르 부르디외의 <구별짓기>에서 저자는 이렇게 말한다. "문화의 대량축적의 원리인 축적하려는 격심한 요구는 극단으로 즉 부조리로 치닫는 재즈와 영화 애호자의 도착에서 매우 분명하게 드러나는데, 이러한 도착은 교양화된 응시의 정통적 정의에 내포되어 있는 것이다. 그리고 이러한 도착은 작품의 소비를 작품에 대한 부대 지식의 소비로 대체한다." 나는 이 예시로 재즈와 영화 애호자와 맞먹는 또 다른 유형으로 하루키 애독자가 있다고 생각한다. 그의 작품 1Q84에 소재로 등장하는 야나체크의 신포니에타에 관해 말해보자면, 1Q84의 선풍적 인기와 더불어 저 클래식 음반이 불티나게 팔렸다고 한다. 하루키의 이런 감각적 부대 지식은 하루키를 사랑하게 하는 이유 중 하나이다. 매년 노벨 문학상 발표 때마다 하루키의 무관에 말이 많지만 내가 감히 한 마디...(여긴 내 공간이니까) 써보자면 그는 노벨상에 어울리지 않는다.

하지만 트렌디한 소설 중엔 최고지.
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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